[매일성경]10분 묵상

악의에 놀라지 않기 / 사도행전 23:12-35

스윙핸즈 2024. 6. 21. 00:07
반응형

 

악의에 놀라지 않기

2024.06.21.

사도행전 23:12-35 // 12.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3.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오늘 함께 생각할 주제는 악의에 놀라지 않기입니다.

 

혹시 이런 경험이 있으실까요? 살다보면, 이유없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요. 이런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려하지 않고, 우선 첫인상으로 평가합니다. 그리고, 직접이 아닌, 간접으로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나의 평가를 듣고, 나를 결정해버립니다. 그 이후론, 저 사람은 어떠어떠해~라고 아주 자신있게 단정하여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요~ 나랑 직접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도 아니기에,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런 일들이 대학에서도, 군대에서도, 직장에서도, 심지어는 교회에서도 같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제 첫인상이 별로인가? 오해를 살만한 이미지인가?라고 심각하게 고민해 본적이 있으나,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고, 이유없이 미워하는 사람은 무한히 조심하는 걸로 저의 삶의 태세를 갖췄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바울 역시 그런 상황입니다.

12,13절입니다.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유대인들이 바울을 싫어할 수 있습니다만,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 않겠다고 동맹을 결정한 조직이 40여명이나 되었습니다. 바울이 뭐라고, 인간적으로 보면, 한없이 나약한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무슨 대통령이나 왕을 암살하는 것도 아니고, 40명이나 목숨을 걸다니요.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되는 상황입니다.

그들이 바울에 대해 가진 이미지는, 기껏해야, 22장 앞뒤에 등장하는 바울의 설교, 또는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면서 그가 했었던 행동들, 또는 그 이전이라면 마게도냐와 이방도시들에서 복음을 전하며 활동했던 그의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던 것으로, 바울을 단정했던 것이겠죠. 다시말하면, 소문으로 바울을 평가하고, 또는 짧은 그의 설교와 예루살렘에서의 행적이 그를 평가한 전부였을 겁니다. 이들 중 바울과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었다거나, 바울의 믿음과 학식, 그의 삶에 대한 진정성에 대해서 실제 경험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지금, 이들은 목숨을 걸고, 적개심을 표출하고, 암살계획을 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 사건은, 아주 극적으로 발각?됩니다. 바울의 조카가 이 음모를 듣고 바울에게 알렸습니다. 바울은, 로마군대에 알렸고, 로마군은, 바울을 가이사랴까지 아주 안전하게 보호하여 호송합니다.

23,24.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9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200명과 마병 70, 창병 200명을 준비하게 합니다. 바울이 타고갈 말도 준비하라고 합니다. 아무리봐도, 40명의 암살자들을 너무 과대평가한게 아닌가 하는, 과잉보호, 과잉호송작전 같아 보입니다.

사실, 여기에는 천부장의 의도가 숨어있었습니다.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고 싶어, 벨릭스 총독에게 바울을 보내면서, 내가 이 로마사람을, 내가 이 음모를 듣고, 내가 이를 보호하고, 내가 명령해서, 내가 총독님께 이를 보냅니다.라고...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나를 그렇게 부각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들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섭리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D의 다스리심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악한 의도를 가진 유대인들의 궤계를, 탐욕적인 로마군인의 손을 빌어, 자신의 백성인 사도바울의 안전을 지키셨던 것이죠. 바울의 암살음모를 듣고, 인간으로서는 어떻게 이를 막아야 하는가? 바울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나? 방법을 강구해도 불완전했을텐데, 인간이 생각하고 계획할 수 있는 그보다 훨씬 높은 차원으로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이신 것이죠.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악의에 대처하는 신자의 자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바울과 같은 위기의 상황을 맞딱뜨릴 수 있습니다. 그것도, 내가 무엇인가를 한 것이 아닌, 혹은 오해로 시작된 여러 가지 외부의 공격들이 있습니다. 회사든, 교회든, 어느영역이든 그건 상관없이 일어나는 사건들이지만, 여파는 심각하게도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존재나 명성에 피해를 입히기도 합니다.

여기서 신자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첫째는, 놀라지 마십시오. 구밀복검이라 하죠. 사실 죄성을 내재한 모든 인간과 세상은, 겉과 속이 다를 수 있습니다. 엊그제, 어떤 모임에서의 대화주제가, 내 등에 칼꽂힌 사건이었는데, 엄청 많은 얘기가 오고갔습니다. 등에 칼을 꽂고,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히고, 뒷통수를 맞는 일들이, 비일비재한데, 그래도 놀라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신뢰할 분은, D 외에 아무도 없음을 기억하시지요. 인간에게는 그래서 소망이 없었던 것입니다.

- 둘째는, 하나님의 보우하심입니다. 악의를 품은 세상, 칼을 숨긴 악함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보우하십니다. 도저히 이번 사건을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좌절과 낙망을 경험할지라도, 하나님은 보호하고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 말이지요.

실패를 경험하고, 실망과 슬픔에 직면해서도, 우리가 아주 엎드러지지 않을 이유는, 주께서 우리를 살피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37: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우리가 의지하는 하나님은, 붙드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주께 소망을 두시지요.

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만나는 상황들, 사람들 속에서,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기. 악인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선의를 베풀기. 이 어려운 일들을 해내고 있다면, 우리는 한차원 높은 신앙인이 된 것이 아닐까요? 오늘도, 한차원 높아진 신앙의 하루를 보내는 꿈터성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도행전

#10분묵상

#QT

#매일성경

#경건생활

홈 | 꿈터교회 (modoo.at)

꿈터교회.동탄 - YouTube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