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10분 묵상

사회적관습(고정관념) / 마가복음 7:14-23

스윙핸즈 2024. 2. 28.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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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관습(고정관념)

2024.02.28

마가복음 7:14-23 // 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15.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오늘 함께 묵상할 주제는 사회적 관습(고정관념)”입니다.

본문 마가복음 7장에서는,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학자들과의 분명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는 예수님의 사상, 주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손을 씻는 의식법, 고르반이라고 불리우는 일종의 서원개념, 그리고, 오늘 14절부터는 부정과 관련된 의식을 포함한 관습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14절에서는 서원을 잘못 다루고 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면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14-16절입니다. “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15.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

예수님은 몸을 더럽히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지적하셨는데요, 밖에서 들어가는 것은 아무것도 사람자체를 더럽히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초콜릿을 먹으면, 성질이 안좋아진다거나, 미역국을 먹으면 우유부단해진다거나.... 뭐 이런 것을 이제는 우리가 미신이라고 부를 정도로 말이 안된다는 걸 다들 아실텐데요. 근데, 그 당시 랍비들은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부정한 것이 몸에 닿을 때, 사람은 더러워진다. 사실, 몸이 더러워지는게 아니라, 마음과 영혼이 더러워진다는 뜻으로 말했습니다.

사회적 통념이 되어버린, 이 개념에 대해, 예수님은 반박하셨습니다. 몸 안에 들어오는 것들은 결코 마음을 건드리지 못하고, 소화기관으로 들어갔다가 결국에는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연한 말을 하셨지만, 논지는 이렇습닙다.

음식은 결코 사람을 더럽히는 근원인 마음을 건드리지 못한다.”

지금 여기서, 예수님이 레위기의 율법을 종식시켰다기 보다는, 좀더 발전시켰다고 보시면 어떨까요? 몸을 더럽히는 것의 참된 이유가 음식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사실을 꼬집고 계신 것이죠.

무리를 떠나보낸 후, 제자들은 이 비유의 의미를 다시 묻습니다. “예수님 아까 그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20-23. “20.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21.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예수님은,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19)하셨고, 이어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악한 마음이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소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 위선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은 아닌척 하면서, 나는 그런 적 없는 척하면서 다른 사람만 그렇다고 지적하는 모양새, 그런 분위기, 그런 상황, 관습에 대해서 질타하고 계신 것이지요.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무엇을 우려해야 할까요?

사회적 관습으로 굳어진 우리의 종교생활입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다보면, 모든 것이 교회입장에서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그렇게 한쪽만 생각하다가 세상속 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균형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일요일에 교회 안가는 사람을 무시하는 겁니다. 교회다니는 사람이 수요예배에 나오지 않거나, 바른 말을 해서 분란을 만드는 것을~ 믿음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되려, 교회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서슴치않고 말해버립니다. 과연 그렇게 말해도 될까요?

종교생활이라 부르는 우리의 종교관습, 고정관념은~ 완전히 우리 교인들에게는 사회관습으로 눌러앉아 버렸습니다. , 그러면 안됩니다. 종교라 불리우는, 우리 기독교는 생명의 근원이지, 우리 사회의 관습법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냥 들은대로 행동합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이 행동하던대로 따라 행동합니다. 말하는대로 따라 말하고, 시키는대로 행동합니다. 사회법이되어버렸고, 관습법이 되어버렸습니다. 교회가 법이 되어버린 것이죠. 문제는 이게 교회마다 다르기도 하고, 또는 성경과 다르다는 것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회법이 되어버린 관습들에 대해, 중요한 팩트를 자꾸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아는대로, 배운대로, 지금껏 해온대로 하는 게~ 신앙이 아니라, 성경이 중심되어,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이라는 실제적인 하나님나라복음을 살아내는 것이 진정한 신앙임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며, 이렇게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1.예수님은 율법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성세대나 기존의 세태를 무조건 비판하는 것도 아닙니다. 율법이 말하고, 교회가 지금껏 지켜오던 관습들의 취지, 왜 그렇게 행동해야만 했는지~ 진정한 의미를 찾아서 이 시대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죠.

지지난주 소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율법은 존재하고, 율법주의가 폐지된 것임을 선을 긋습니다. 말씀을 통해 주신 율법은, 도덕법, 의식법, 시민법으로 분류가 되는데, 부모를 공경하거나 이웃을 배려하는 도덕법은 여전히 존재하고, 유월절이나, 제사법 같은 의식법은 폐지 되었고, 시민법은 당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취지를 고려해서, 현대사회로 적절하게 변경시켜 정신을 이어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사회적 약자로 규명하고, 안식년과 희년을 주장했다면, 오늘날에는 나그네보다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연약한 사람들, 장애인, 미혼모, 1인가구 등의 연약한 자들을 위해 적절한 변형을 가해 이 시대에 적용해야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율법은, 진정한 의미, 진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군가 말해준 대로, 관습대로 그냥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교회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2.그렇다면, 열린마음이 필요합니다. 기존의 정신을 지키면서, 동시에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정신인데요~ 무조건 안듣는다거나, 무분별하게 받아들인다거나 둘다 안된다는 겁니다.

시대마다 신문물이 들어올 때마다 사회적 진통이 있었습니다. tv도 그랬구요, 컴퓨터도 그랬고, 핸드폰도 그렇습니다. 현재 우리의 상황입니다. 적절하게 잘 활용하면 매우 유용하다는 원칙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게 잘 안돼서 어려워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누군가 이렇게 해라~!!라고 명령하면 해결되는 걸까요? , 계속되는 고민과 도전, 해법이 필요할 겁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그렇게 쉽게,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야~라고 말해버리는 것은 어쩌면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간사한 편법일 수 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에 중꺽마라는 단어를 많이 쓰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있는데요~ 중꺽마가 뭐냐면, 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좋은 뜻을 가졌습니다. 헌데요, 이 중꺽마를 오용하는 사람들이 많이보였습니다. “나는 중도에 꺾이지 않겠어~”라는 자기고집의 실현, 자기고집의 정당화?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더러더러 있었습니다. 나는 성경을 읽지 않겠어~중꺽마, 나는 기도를 하지 않겠어~중꺽마..... 말도 안되는 얘깁니다.

그 말은 이렇게 사용해야 합니다. 나는 말씀대로 살겠어~중꺽마. 나는 10.10.10을 평생하겠어~ 중꺽마./// 신자라면, 당연히 이 중꺽마’(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를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의 결단으로 사용하셔야 맞습니다. 우리 삶은 내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래~”가 아니라, “주님께서 성경에 이렇게 말씀하셨어~”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주님을 닮아, 시대적 정신과 성경적 정신을 이어받으며, 이 시대에 적절하게 말씀을 이루어나가는 진실한 신자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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