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10분 묵상

고집세다(완강완고) / 신명기 2:26-37

스윙핸즈 2024. 1. 4.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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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세다(완강완고)

2024.01.05.

신명기 2:26-37 // 30.헤스본 왕 시혼이 우리가 통과하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네 손에 넘기시려고 그의 성품을 완강하게 하셨고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오늘 함께 생각할 주제는 완강하고 완고함입니다.

본문 신명기 2장 후반절은, 이스라엘이 광야사막을 떠돌다 이제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헤스본을 지나려 합니다. 그리고, 이전에 지나쳤던 세일땅과 모압,암몬처럼~ 길만 지나겠고, 예의를 지키겠다고~ 식량도 구입해서 먹겠고, 물도 돈을 받고 구입하여 먹겠다고 정중히 요청합니다.

26-29. “내가 그데못 광야에서 헤스본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평화의 말로 이르기를

나를 네 땅으로 통과하게 하라 내가 큰길로만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라

너는 돈을 받고 양식을 팔아 내가 먹게 하고 돈을 받고 물을 주어 내가 마시게 하라 나는 걸어서 지날 뿐인즉

세일에 거주하는 에서 자손과 아르에 거주하는 모압 사람이 내게 행한 것 같이 하라 그리하면 내가 요단을 건너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르리라 하였으나

물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요, 요즘에는 물을 당연히 사먹죠. 하지만, 불과 30년전 제가 중학교 때만해도, 홍콩에서는 물도 사먹고, 공기도 사먹는대~라고 하면서, 이상한 나라 취급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4000년 전의 구약시대에 물을 사먹는다는 말은 사실 말도 안되는 소리였습니다. 그 정도로, 격식과 예의를 차려, 헤스본 땅을 지나가겠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실제 세일과 모압 땅을 그렇게 지나가기도 하였구요.

하지만, 헤스본왕의 반응은 이전의 왕들과 달리 반응합니다.

30절입니다. “헤스본 왕 시혼이 우리가 통과하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네 손에 넘기시려고 그의 성품을 완강하게 하셨고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헤스본 왕 시혼은 거부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시혼땅을 접수하라고 하십니다.

31.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가 이제 시혼과 그의 땅을 네게 넘기노니 너는 이제부터 그의 땅을 차지하여 기업으로 삼으라 하시더니...”

이스라엘 백성은 시혼을 점령했고, 그 땅과 그들의 소유를 얻었습니다.

헤스본왕의 선택에 나라의 명운이 결정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특이한 부분이 있습니다. 30절인데요, 하나님께서 그를 네 손에 넘기시려고 그의 성품을 완강하게 하셨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

[완강하게 하셨고, 완고하게 하셨다.]

완강과 완고. 한글자 차이지만, 뜻은 거의 같습니다. 고집스러움입니다.

, 그러면, 고집스러운 것은 좋은 것일까요? 나쁜 것일까요? , 그 자체로는, 좋다 나쁘다를 가릴 수는 없습니다. 좋은 말로하면, 주관이 있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텐데요, 저는 고집과 주관을 이렇게 구분합니다.

정주하는가? 추진하는가?

고집스러움은 움직이지 않으려하는 겁니다.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려 하는 느낌이 좀 있습니다. 모험보다는 안정을 선호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옴짝달싹 꼼짝않고, 그냥 상황이 바뀌기를, 주변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헤스본왕 시혼의 입장에서는 떠돌이 민족, 이스라엘을 무시했을 수도 있고, 나라도 없는, 도망쳐나온 난민이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난민정도보다 더 하찮게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 이들 무리가 힘과 재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한다면, 불편한 요청, 거북스러운 요청에 문을 닫아버렸던 것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본인들이 이스라엘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을 겁니다. 들어오지 말고, 건드리지 말고,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는 말일겁니다. 그런 폐쇄성은 헤스본으로 하여금 안주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사실 이스라엘이라는 여파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반면, 추진하는 것은요? 역동성을 내포하는 것이라고 보면 어떨까요? 세일과 에돔, 모압들이 길을 터주며, 이스라엘을 통과하게 하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을 겁니다. 나라도 없는 민족이, 38년을 사막에서 떠돌던 민족이, 그래서 소문만 무성한 인간들이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직접 근거리에서 눈으로 그들을 보았을 겁니다.

가족이 있었고, 가축과 금은패물이 있었고, 생각보다 부유했고, 강성했고, 장정 6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눈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들 뒤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기회가 되엇을 겁니다. 변화의 물결이 그들을 훑고 지나가면서, 당황했을 것이고, 더불어 새로운 도전을 마음 속에서 경험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본다면, 이스라엘의 광야 38년은, 잃어버린 38년이 아니라, 이 일대를 혼란스럽게 하고, 영향력을 과시했던 38년이 아니었을까요?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나라 없는 설움, 도망쳐나온 망명민족, 거주할 곳 없는 정주없는 유목생활로 마음이 상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움직이는 곳마다, 그 일대가 바짝 긴장하고 있었을테니 말입니다.

헤스본의 완고함을 정주를 위한 고집스러움이 었다고 한다면, 반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고집스럽게 지켜내는 자들이었습니다. 꿋꿋한 완강함을 지닌 민족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오늘은 그런 와중에, 헤스본 땅을 지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땅을 주시겠다는 소식, 복음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이제, 그 땅에 거주해도 되고, 멈추어도 되고, 거기서 이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야~”라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죠.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그러면, 무엇을 해야할까요?

정주가 아니라, 추진입니다.

완고한 고집스러움을 헤스본처럼 정주하려는데 사용하겠는가? 이스라엘처럼 추진하는데 사용하겠는가? 완강은 기질이 꿋꿋하고 고집이 세다면, 완고는 융통성이 없는 고집셈입니다. 완강하겠는가? 완고하겠는가?

완강을 선택하시지요. 꿋꿋이 걸어감입니다. 멈춤 아닙니다. 정주 아닙니다. 주의 길을 걸어감입니다. 오늘 하루도, 만나는 사람, 주어지는 상황 속에서, 주님제자로 신실함으로 살아내는 꿈터성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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