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10분 묵상

클루지(확증편향) / 욥기 34:1-37

스윙핸즈 2023. 12. 11.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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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루지(확증편향)

2023.12.11

욥기 34:1-37 // 36.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37.그가 그의 죄에 반역을 더하며 우리와 어울려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오늘 함께 묵상할 주제는 클루지입니다.

클루지는 개리마커스가 쓴 클루지라는 책에서 사용하는 용어인데요, 클루지는 사고의 틀, 실제로는 제대로 작동한 적이 있기는 하나, 이제는 기능이 안되는 방식, 또는 애초부터 잘못 설계된 사고의 틀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을 처리하는 방식, 해결하는 방법, 사고의 틀, 나만의 룰이나 조직의 룰이 있는데, 그게 적절치 않은거라고 이해하셔도 될듯합니다. 유사한 용어로, 고정마인드셋, 성장마인드셋 이런 용어를 들으셨을 수도 있고, 좁은 틀로 세상을 이해하려한다는 아전인수, 좌정관천 등의 사자성어로 이해하셔도 될 듯 합니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말로 바꾸면, 흔히들, ‘책한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라는 말 정도는 들어보셨을 텐데요, 자기가 읽은 한권의 책으로 다른 모든 것들을 평가해 버린다고 하는 확증편향을 말한다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결국은 균형있는 통찰(insight)이 필요한 거죠.

 

우리가 현재 묵상하고 있는 욥기서야 말로, 얼마나 기독교인이 편협해 질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실수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욥을 칭찬하는 반면, 욥의 세친구를 많이들 욕하고, 무시해 왔는데, 사실 욥기서를 꼼꼼히 읽어보면, 우리가 욥보다는 오히려 세 친구처럼 행동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 친구인 엘리후의 발언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엘리후 자신은 엄청난 새로운 것을 말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결국 세친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자신은 새롭고, 자신은 정확하고, 진리라고 말하지만, 사실 잘 모르고 하는 말 같습니다.

욥기 34장에서의 엘리후의 발언은 그 수위를 더욱 높였습니다. 여기서 제가 불편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틀린점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느 한부분을 보면, 맞는 말인데요, 그러다 보니 다른 부분들까지~ 전체를 그냥 맞다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게 되는 것이죠.

10-12. “10.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11.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 12.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불의를 행하지 않으심, 공의의 하나님... 틀린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욥의 발언은 하나님을 모독했고 불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5,6. “5.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6.내가 정당함에도 거짓말쟁이라 하였고 나는 허물이 없으나 화살로 상처를 입었노라 하니

그의 편향된 사고방식 안에서 욥의 위와 같은 발언은~ 사실, 아프다, 슬프다, 내가 절망중이라는 고난을 통과하는 처절함을 표현한 것인데도, 엘리후는 세친구들처럼, 욥이 하나님을 욕하고 있다. 감히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욕한다~ 하고, ‘너 하나님을 비방하는 자구나~’, 마치 이단처럼 취급해 버립니다. 그러니, 이제 회개하라고 강요하는 것이죠.

31. 다시는 범죄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라

32. 악을 행하였지만 다시는 안그러겠습니다라고 말하라

마치, 엘리후는 욥을 유치원 아이 가르치듯이~ 다그칩니다. 네가 똑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이고, 내가 지금 해결방법을 알려줄테니, 따라해보라고 말하는 거죠. 이 얼마나 무례하고, 폭력적인 언행인가요?

거기서 더 선을 넘습니다. 만약,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나는 이렇게 기도하겠다.

36,37. “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

그가 그의 죄에 반역을 더하며 우리와 어울려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사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균형있는 통찰 아니고, 한가지만 알고, 둘은 모르면서, 섣불리, 다른 사람에게 충고하고, 지도하고, 가르쳤습니다. 물론, 너무 신중할 때는 답답하지만, 그렇다고 신중하지 못한 경솔함은 더욱 문제입니다.

마치, 책 한권 읽은 사람이, 세상을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처럼~ 탁구 5,6부인 아마추어가 선수출신 앞에서, 이게 맞다느니~ 저게 맞다느니~하면서 으름장을 놓는 형국인 것이죠.

네 클루지입니다. 확증편향입니다.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신자는 이를 넘어서서, 균형있는 통찰을 견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죠. 누구나에게 통하는 어떤 법칙은 없습니다. 상황과 환경을 고려하지 않으면, 도움도 되지 않고, 마음을 얻을 수도 없고, 오히려 무례하고, 위험한 상황만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죠.

 

대강절 첫주를 보내고, 둘째주를 시작하면서, 오늘은 예수님의 오심은 어떤 모습으로 오셨는가?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성인 예수, 강력한 전제군주, 왕으로 오시지 않고, 연약한 갓난아이의 모습으로, 또 겸손의 왕으로 성장하시기 까지, 묵묵히 삶을 살아내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 겸손의 예수를 기억하며, 닮는 그런 신실한 신자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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