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10분 묵상

아무말 대잔치 / 욥기 32:1-33:33

스윙핸즈 2023. 12. 7.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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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말 대잔치

2023.12.08

욥기 32:1-33:33 // 15.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16.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17.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18.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

29.실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30.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이끌어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니라....

 

오늘 함께 묵상할 주제는 아무말 대잔치입니다.

오늘은 32장과 33장을 함께 묵상할 텐데요, 본문 32장에서 욥의 세 친구 외에 번외편으로 새로운 캐릭터가 갑자기 등장합니다. 엘리후입니다. 엘리후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이 역시 친분이 있던 사람인 듯 하고, 또 세 친구와 욥을 포함한 네명보다는 젊은, 그래서 자신의 연소함 때문에 대화를 듣고 있었을 뿐, 대화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말합니다.

하지만, 32장부터 시작되는 엘리후의 변론은 꽤 길게 37장까지 이어질 텐데요. 오늘은 엘리후의 발언으로 통해, 그가 가진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고통에 대한 논리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2장 초반부입니다. 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는 것을 꺽을 수가 없었던 세 친구는 말하기를 그칩니다.

2,3절입니다. “2.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3.또 세 친구에게 화를 냄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함이라....”

여기서 엘리후가 분노하며 발언을 시작하는데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는,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를 의롭다고 말했기 때문이랍니다. 그랬나요? 잘 모르겠지만, 이 세친구와 엘리후까지 4명은 그렇게 들었나 봅니다. 두 번째는 3친구에 대한 분노였는데요~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해 욥을 굴복시키지 못한 세명의 선배들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33장부터 기록된 엘리후의 발언은 그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수 있게 합니다.

우선은, 욥의 발언에 이미 답이 있다고 하면서, 욥의 발언을 되풀이 합니다.

9-11. “9.이르기를 나는 깨끗하여 악인이 아니며 순전하고 불의도 없거늘 10.참으로 하나님이 나에게서 잘못을 찾으시며 나를 자기의 원수로 여기사 11.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하였느니라....”

너도 이미 말했잖느냐~ 네가 아무리 깨끗하다고 말해도, 하나님이 너의 잘못을 찾으셨고, 그런 너를 주께서 발을 묶으셨고, 감시하는 중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게, 이유 맞다. 너는 죄가 있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엘리후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에게 가르칩니다.

15-17. “15.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16.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17.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꿈이나 환상을 이용해서, 사람의 귀를 여시고, 두렵게 하시면서 그의 행실을 고치라고 경고하는 분이시다. 그렇게 하심으로, 어떤 사람에게 있는 악함, 죄악, 옳지 않은 행실을 버리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방법은 목적이 있습니다.

17,18절입니다. “17.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18.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

사람의 교만을 막으신다. 사람의 영혼을 구덩이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멸망치 않게 보호하시는 D이라고 말합니다.

29,30절입니다. “29.실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30.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이끌어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행하심은, 그의 영혼을 건져내 생명의 빛을 비추기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네 맞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매를 사용하셔서 자신의 백성들, 자신의 자녀를 사랑으로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철썩같이 맞는 말이, 오늘 이 상황에서는 미스매치(miss match)가 되었다는 건데요, 엘리후는 이 논리를, 욥에게 대입합니다. 고난 중에 있는 자에게 대입합니다. 아파하고, 슬퍼하고,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가족을 잃은 자에게~ 그리고 질병으로 고통 받는 자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저는 엘리후를 놓고 이렇게 질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엘리후가 과연 제정신이었던 걸까요?

 

우리 주변에도, 또 세월을 지나다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절망을 경험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차마 무엇이라 위로도 할 수 없는, 오히려, 말을 꺼내는 것조차 미안해지는 사건을 맞딱뜨린, 큰 슬픔에 빠진 우리의 이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엘리후처럼 말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맞는 말이라고, 아무데나 아무렇게나 적용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예전에 사역했던 공동체의 교인 중에 아주 큰 슬픔을 당했던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때, 함께 계셨던 목사님이 그러셨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참 안된 일이지만, 우리교회에는 이득이 되겠어~ 그 사람을 위해 기도도 하고, 마음도 모으고, 이 사건이 구심점이 되겠어~” 충격이었습니다. 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말씀하시는 건지~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들이 맞딱뜨린 고통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전히 아직도 가끔 그 생각이 나는데요(소름), , 그분은 고난 중의 교우를 가족이라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사실, 공감능력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 애초에 자신의 영역에 아무도 들어와 있지 않았던 것이죠.

오늘 엘리후의 말은 구구절절히 맞지만, 100프로 틀려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엘리후는, 욥을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말이나 했던 것이죠. 만약, 욥이 엘리후의 형제였다면, 그의 부모나 친척이었다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슬픔을 당한 자가 있다면, 그를 내 형제로, 가족으로 여기시고 생각을 시작하셔야 합니다. 고통과 고난 중에 있는 그 누구도, 신자든, 비신자든 상관없이, 그 누구라도, 우리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출발하셔야 합니다. 그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12월 대림절을 지나면서 더 절절히 기억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 상관없던 우리를 위해, 기꺼이 하늘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고통을 함께 하려 하셨던 예수의 헌신과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그 사랑이, 우리에게 묻어 있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의 정체성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우리, 나 역시 그 사랑의 법칙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죠. 사랑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시지요. 예수님을 기다리며, 예수님 닮기를 고대하는 올바른 신자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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