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10분 묵상

천사의 얼굴 / 사도행전 6:1-15

스윙핸즈 2024. 5. 12.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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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얼굴(위임)

2024.05.13.

사도행전 6:1-15 // 5.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

 

오늘 함께 묵상할 주제는 천사의 얼굴(위임)”입니다.

본문 사도행전 6장은 세워진 교회가 어떻게 위임되고, 발전해가는지, 그 잠재력이 어떻게 퍼져나가는지를 보여주는 교량역할을 하는 장입니다. 3,4,5장이 교회의 시작을 알렸다면, 6,7장은 예루살렘에서의 교회성장과, 그리고 유대와 사마리아, 이방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구조적으로 누가사도는 이야기의 스포트라이트를 베드로에게서 옮깁니다. 6,7장에서는 스데반에게, 8장에서는 빌립에게, 그리고 9장에서는 바울로~ 스데반은 헬라파 유대인들에게로의 확장, 빌립은 사마리아로의 확장, 바울은 이방으로의 복음이 실제 전해지도록 위임받고, 사명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은 6장 전반에서는, 예루살렘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제자들은 많아졌지만, 헬라파 과부들이 교회의 구제헌금을 받는 명단에서 자꾸 누락이 되어 히브리파 계열의 사람들을 원망합니다. 여기서 12사도들은, 모든 제자들을 불러모아, 업무를 분배하기를 요청합니다.

2-4.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그리고, 여기서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제자들을 온 제자들이 선택합니다. 그 이름은 이렇습니다.

5,6. “5.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 6.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스데반이 등장하고, 빌립이 등장하고.. .그외 제자들이 등장합니다만, 여튼, 다른 7장과 8장에서 주인공이 되는 스데반과 빌립을 주목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업무분배가 된 예루살렘교회는 각자의 소명에 충실했고, 더욱 왕성하여졌습니다.

 

8절부터 새로운 문제가 생기는데요~ 이전의 사도들, 베드로와 요한이 받았던 핍박이 재현됩니다. 성령과 지혜,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스데반과의 논쟁에서 이길 수 없었떤 회당의 어떤 자들은~ (물론, 종교지도자들이었겠지요.) 스데반을 마치, 예수님처럼 신성모독을 했다는 말로 거짓모함을 합니다.

9-11. “9.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 10.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 11.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신성모독은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사형에 해당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라는 인물을 한번 성공했는데, 두 번을 성공하지 못했을까요? , 결국 또 같은 방법을 씁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14,15절입니다. “14.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모함을 받아, 잡혀온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천사의 얼굴은 뭘까요?

천사의 얼굴을 혹시,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십계명을 받고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얼굴에서 빛이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아니면,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얼굴에, 다른 얼굴이 겹쳐보인다는 말일까요? / , 스데반이 지금 무엇을 했기 때문에, 얼굴에서 광채가 난 걸까요? 스데반은 아직 공회 앞에서 변론을 시작하거나, 기도를 시작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7장에서처럼, 설교를 한바탕 하고 나서, 기도를 올려드릴 때, 얼굴에서 빛이났따고 하면 뭔가 멋이있을 듯 한데요, 그런 상황은 아닌 듯 합니다. 평범했던 상황 같고, 스데반조차 당혹스러운, 갑자기 끌려왔고, 억울한 상황이었고, 자신에 대해 위증을 하는 발언을 듣고 있었습니다. 헌데, 천사의 얼굴이라뇨???

 

15절에서, 공회 중에 있는 사람들이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유심히보았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니까, 이 억울한 상황, 죽음의 위기 앞에 있는 스데반의 표정을 살핀 것이죠. 그리고, 그 표정이 천사의 얼굴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천사의 얼굴은요~ 여러 주석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인격입니다. 모함하는 무리들 앞에서, 주눅들지 않았고, 당황해하지 않았고, 8절에서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3절에서 말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의 얼굴이었던 것이죠.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행동해야 할까요?

, 천사의 얼굴입니다.

얼굴은 그 사람을 나타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세월의 흔적이 묻는다는 말인데, 고생한 얼굴, 귀하게 자란 얼굴~ 이런 식의 표현이 있지만, 사실 얼굴은 인격이 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얼굴의 생김새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에서 묻어나는 표정인 것이죠.

저는 사람의 표정을 관찰할 때가 많은데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혼자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굳은 얼굴이고, 무표정한 얼굴인데요, 그 사람의 성격이나 품성이 가늠이 안됩니다. 하지만, 전화통화를 하거나, 옆사람과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의 표정에서, 어떤 사람일까 상상하게 됩니다. 밝은 얼굴로 웃으며 대화를 하는 사람, 말소리는 안들리지만 눈빛 표정 얼굴의 방향들에서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는 거죠. 그러면,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 사람 괜찮은 사람일 수 있겠다....” 그 사람의 인격을 상상합니다.

오늘 각박한 세상 속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가까운 이들에게 잘합니다. 친절하고, 배려있고, 사랑베풀기를 생가보다 잘합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 관계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친절과 배려가 매우 약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저 사람이 내 바운더리로 들어와야지 내가 사랑을 붓기 시작합니다. 이게 일반사회에서 가진 생각이라면, 신자는 한걸음더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낯선이들을 배려하기입니다. 이를, 성경에서는 환대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의 성격이 말하는 것처럼, 초청도 함께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낯선이들을 초청하고, 그들을 환대하는 것~ 이게 신자의 기본 태도입니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들에게만 잘해준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악인도 자기 자녀에게는 잘한다는 성경말씀처럼, 선을 이미 긋고 있다면, 그건 좀 생가해볼 문제입니다.

세상에서는 에티켓이라고 말하는데요, 그런 초청과 환대가 우리에게 있어진다면, 아마도 스데반의 얼굴에서 보았던 천사의 얼굴을 세상은 엿볼 수 있지 않을까요?

천사의 얼굴이 되시지요. 생김새나 표정을 넘어서서, 초청과 환대, 낯선이에게 선대하는 신자가 되는 것 말이지요. 한주를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을 선대하기, 낯선이들을 긍정하기, 혹여 내 상황이 부정되더라도 예수닮은 마음으로 긍정하기를 시도하는 꿈터성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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