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10분 묵상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오해(꼬꼬오) / 욥기 22:1-30

스윙핸즈 2023. 11. 28.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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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오해(꼬꼬오)

2023.11.28

욥기 22:1-30 // 4.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5.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6.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7.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오늘 함께 묵상할 주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오해(꼬꼬오)”입니다.

본문 욥기 22장은 다시 엘리바스의 발언으로, 친구들과의 대화 3번째 턴입니다.

22장에서 엘리바스의 발언은 아주 강렬합니다. 욥에 대해 단정짓고 있고, 심지어는 욥이 짓지 않은 죄까지도 만들어서 나열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엘리바스는 욥을 극악무도한 자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21장에서 욥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왜 악인이 승승장구하는지, 의인은 왜 고통 중에 던져져 절망을 경험하고 있는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이 맞는지, 하나님의 침묵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말하며 괴로워 합니다.

아마도 이를 듣고 있던 엘리바스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나 봅니다. 욥이 스스로 의인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참아줄 수 없었던 것일까요?

3.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

너의 의로움을 하나님이 기뻐하거나 하나님에게 보탬이 되겠느냐고 말합니다. , 맞는 말이지만, 지금 이 말을 왜 하는 걸까요? 위로는커녕, 이런 말투는 싸우자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단정합니다.

4,5. “4.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5.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이런 말입니다. (, 네가 하나님을 잘 몰라서 말하는 것 같은데, 하나님은 악인을 심판하시는 분이야~ 지금 너의 고난이 팩트잖아, 그렇다면, 그건 하나님의 심판이야~)

고난은 심판이라는 명제가 너무나 견고합니다. 엘리바스는 자신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이 명제에 대해, 한발도 물러설 생각이 없습니다. 친구고 뭐고, 진리수호가 가장 먼저입니다. 과연 그래도 되는걸까요? 예수님이라도 그러셨을까요?

고난은 D의 심판이고, 욥의 이 심각한 고난은, 분명히 심판일 것이고, 얼마나 큰 죄를 지었길래 이런 처절한 심판을 지나가고 있는가? 안쓰러워하면서, 답답해 하고 있습니다. 어서 빨리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답정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오해입니다.

엘리바스는 답을 정해놓고 욥과 대화하고 있습니다. (니가 그러니까 망했지~ 나는 그게 다 보이는데 너는 안보이는구나~ 별수 없구나~) 라는 고압적인 자세로 욥을 대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욥이 저지르지도 않았던 죄들을,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나열합니다.

6,7,9. “6.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7.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9.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형제에게, 헐벗고, 목마른 자, 주린자에게, 과부와 고아와 같은 약자들을 향해, 너는 범죄하였다.. 그들을 착취했고, 그들을 괴롭혔다. 그렇게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겠는가?라고 말합니다. // 근데요, 엘리바스가 하는 말이 진짜일까요? , 아닙니다. 팩트체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21장의 욥의 말을 곡해합니다.

13,14. “13.그러나 네 말은 하나님이 무엇을 아시며 흑암 중에서 어찌 심판하실 수 있으랴 14.빽빽한 구름이 그를 가린즉 그가 보지 못하시고 둥근 하늘을 거니실 뿐이라 하는구나..”

분명히 욥은, 악인의 승승장구에 대해, 하나님께 의문을 품고, 자신은 괴롭다고 말했는데요~ 엘리바스는 욥이 하나님을 경멸했다고 말을 바꿔버립니다. (에이 하나님이 뭘 알아? 하나님은 잘 몰라... 하나님은 하늘에 구름이 너무 빽빽해서, 이 세상을 잘 모르시고, 하늘에서 유유자적 산책이나 하시느라 세상을 살피지 않으셔~)라고 말했따고 합니다.

진짜일까요? , 아닙니다. 욥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엘리바스는 왜 이렇게 거짓을 말하는 걸까요?

네, 답을 정해놓고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자신이 거짓을 말하는지 조차 인식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답을 정해놓고, 욥이 자신의 말대로 군말없이 따르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29절입니다. “사람들이 너를 낮추거든 너는 교만했노라고 말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리라

너무 확고한 자신의 신념에 욥을 통제하려했던 듯 합니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에 재고의 여지는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너무 확정적으로 생각하는 사안 때문에, 다른 여지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잠깐만 멈춰서, 여유를 가지고 둘러본다면 보일 것이, 너무 강력한 내 논지 때문에~ 재론의 여지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내 생각이 꼬리를 꼬리를 물어, 오해를 하기 시작하고, 어떤 사안에 대해, 상황에 대해, 혹은 진리에 대해, 오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개별적으로 스스로 잘하고 계시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는 공동체, 신앙의 동료들은 매우 소중합니다. 그들을 통해, 실수를 미리 예방 할 수도 있고, 내 생각에 대해 지지, 격려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탁드리기는, 답정너가 아닌, 예수님이 기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약자와 소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신을 삶을 기꺼이 주셨던 예수님 닮기가 우리에게 일번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 꼬꼬오~말들지 마시고, 말씀이 중심되고, 예수님이 중심되는 그런 하루 되셔서, 주님의 사랑과 인내가, 우리내 삶에 동일하게 깃들여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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