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10분 묵상

신앙양심에 따라 말 할 수 있습니까? / 예레미야 27:1-11

스윙핸즈 2024. 7. 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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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양심에 따라 말 할 수 있습니까?

2024.07.03.

예레미야 27:1-11 // 11.“그러나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 밭을 갈며 거기서 살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의 일입니다. 아주 그 옛날 겨울에 학교에서는 난로에 불을 땠고, 학교 소각장 뒤쪽에 모아있는 땔감나무를 당번인 아이들이 한주간 가져다놓는 것이 임무였습니다. 제가 당번을 맡았을 때, 나무를 짝꿍이랑 소쿠리에 담는데, 다른 반에서 온 아이들이, 어른들이 쓰던 도끼를 숨기자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뭐 그러려니 하고, 돌아왔는데, 오후에, 그 도끼가 없어졌다고 학교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담임선생님이, 혹시 도끼 본 사람있냐고 물었고, 저는 제가 봤다고 말했더니, 관리선생님께 불려갔고, 저를 해당반으로 데려가시더니, 거기서 학생을 알려달라했고, 따라간 곳에 계시던 4-1반 담임선생님은 화가 나서, 그놈을 가만 두지 않겠다고 빨리 지목하라고 닦달하셨습니다.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닌 듯 한데, 어른들이 왜 이렇게 화가 난지 알 수 없었고, 그 무서운 분위기에 몰려서, 그냥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고 돌아온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해프닝이 있고, 도끼는 갑자기 제자리로 돌아왔고 다행히 누구에게도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는 가끔이 사건이 생각납니다. 사실, 제가 누군가를 지목하지 못했던 이유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고, 선생님은 화가나 벼르고 계셨고, 해당학생은 예전에 같은 반이었던 친구라 얼굴과 이름도 아는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회초리라도 맞을 것이 걱정되어~ 처음으로 머릿속으로 계산이라는 것을 하게된 사건이었던 거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이 사건과 매칭이 되지 않겠지만, 비슷한 느낌일꺼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데요, 온당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분노한 주체, 또 해당당사자가 받을 체벌, 사람들의 이목 등을 생각하고 계산하다보니 사람들이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 역시 그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했으니까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엄청난 불의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유발하는 사건이 아니었다는 것이 은혜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 덕분에, 저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난처한 입장을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가 그랬어?”

너는 왜 그렇게 말했어?”

네 의도가 뭐야?”

라고 묻는 사람들 앞에 얼마나 가슴이 졸여지는지, 그리고 타인의 왜곡된 시선이 주는 불편함과 상처를 오늘 예레미야 역시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내게 말씀하시되 너는 줄과 멍에를 만들어 네 목에 걸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메시지를 선포하라고 하셨는데요, 줄과 멍에를 목에 진짜로 걸로, 이 물건들을 실물교육용 교보재로 활용하여, 하나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메시지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벨론에 항복하라. 그들에게 순종하라.” 였습니다.

이런 메시지를 유대 왕에게 말하면 사형이겠죠. 근데, 말하라고 합니다. 게다가, 유다를 찾아온 주변국의 사신들~ 에돔, 모압, 암모, 두로와 시돈의 왕에게도 이 메시지를 전하라고 사신들에게 말합니다. 유다왕으로서는 국가적인 망신입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에게 전권을 위임할 테니, 너희 모든 나라들은 그를 섬기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하는데요, 여호와하나님은 바벨론의 신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이었습니다. 근데, 이 이스라엘, 유대의 신이, 바벨론에게 항복하라고 하다니, 나라의 수명이 다했다는 걸 자처하는 꼴밖에 안되는 것이죠.

이어지는 8-11절까지는 그 이야기를 합니다.

바벨론 왕을 섬기지 않으면,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벌하시겠고 너희는 망할 것이다.”

반대로, 11.

그러나 그 목으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메고 그를 섬기는 나라는 내가 그들을 그 땅에 머물러 밭을 갈며 거기서 살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

바벨론에 머리를 숙이고, 그를 섬기면, 하나님께서 살려주겠다고 합니다.

이 메시지를 선포한 예레미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 매우 심히 곤란한 상황에 빠집니다.

질문 하나 드릴까요? 만약, 내가 예레미야라면, 지금 이 상황을 곧이곧대로 말했을 때 받을 불이익을 생각한다면, 나는 제대로 말할 수 있을까요? 신앙양심에 비추어, 바른 말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겁니다. 가치판단이 애매한 것들 말고, 자녀양육은 이렇게 해라, 건건강관리는 이래라, 예의가 있냐없냐, 말투가 왜 이러냐, 표정은 왜또 그러냐, 공부를 이렇게 해라, 인간관계를 잘해라... 이런거 말고~

아주 명백히, 범죄사실이 드러난 일들, 또는 배임과 방임의 흔적이 역력한 사건들에 대해서만큼은, 정확하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형법으로 문제가 되는 사실이라면, 교회 안에서도 문제가 되는 겁니다. 폭력이나, 성적인 문제나, 사기죄, 갈취, 금품수수, 청탁 이런 것들 뿐만 아니라, 배임과 방임, 재정을 마음대로 유용하거나, 사용한 재정이 배임과 방임, 잘못사용하고, 결과론적으로 해를 입히고, 공동체의 안정이나 존폐에 위기를 가져왔다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하지 않을까요?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불편한 감정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배워왔습니다. , 물론 그렇죠. 하지만, 불의한 것, 악한 것, 누가봐도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될 상식적인 일들까지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좋은게 아니라, 불의에 동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조자 역시 그 책임을 면피할 수 없는 것이죠.

부탁드리기는, 여기에 신앙양심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기준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교회내의 좋지 않은 관습들, 더 나아가 성경의 기준, 신자로서의 세상을 향한 선교사의 측면에서 용납할 수 없는, 죄와의 결탁들에 대해, 신자된 우리는 신앙양심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나에게 피해가 없었으니까, 내 소유가 아니니까라고만 생각하시면 안되는거죠. 그러다가 동조자가 되는 것이죠.

말도 안되는 예언을 해야 했던 예레미야의 곤란함을 보며, 오늘 우리는 말이 되는 중요한 발언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바른 신앙을 세우며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까지, 그리스도와 신앙이 기준이 되는 신실한 꿈터성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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