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10분 묵상

반대를 어떻게 대처할까요? / 예레미야 28:1-17

스윙핸즈 2024. 7. 5.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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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를 어떻게 대처할까요?

2024.07.05.

예레미야 28:1-17 // 10.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고 11.모든 백성 앞에서 하나냐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년 안에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와 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의 길을 가니라....

 

오늘 함께 생각할 주제는 반대를 어떻게 대처할까요?”입니다.

 

어떤 업무를 진행하다보면, 반대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반대로 접근하시는 분들이 있으신데요, 예를들어, “이번에 성경읽기를 하겠습니다.”라고 하면, “목사님 저는 QT하기 때문에 성경읽기 안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거나, 반대로 “QT합시다.”라고 하면, “목사님, 저는 평소에 성경읽기 때문에 qt안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교회의 주요사안들이 강제성을 띄는게 아니기 때문에 자율성으로 참여하시면 되긴하지만, 사실 항상 안하시는 분들이 안하십니다. 항상 잘하시는 분들은, 뭘하자고해도 잘하시는데요~ 그런 반대를 하실때마다 저는 최대한 공감하고, 격려하고, 지지하려고 노력합니다. , 그런 상황이 있으셨군요, 네 다음에 좋은 기회에 다시 도전하시면 좋을듯해요~”라고 말씀드리면서, 동시에, 언젠가 깨닫게 되면 스스로 도전하시겠지~” 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합니다.

사안에 대한 반대 뿐 아니라, 사람 자체에 대한 반대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가끔 이유없이 그 사람이 싫은 사람이 있을 때가 있는데, 혹시 그 당사자가 되어보신 적이 있으실까요? 저는 그런적이 있습니다. 내가 아직 뭘 한것도 아닌데, 이미 미워진 자리에 있은 적이 여러번 있었는데요. 이건 좀 시간이 필요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이고, 인격적인 관계에서 서로가 출발하기 까지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사안이나 사건에 대한 반대와 오해는 그 기간이 짧은 반면, 사람에 대한 반대나 오해는 상당히 긴시간이 필요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냐라는 선지자가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예레미야의 메시지가 이스라엘에게 율법적으로, 정치적으로도 매우 충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무릎꿇고, 그들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목숨을 보존하시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말씀이라 해도, 쉬운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냐는 예레미야와 완전 반대된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바벨론이 멸망할 것이다.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라~ 2년 안에 다시 우리를 회복시키신다고 하셨다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바벨론을 무서워하던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또 무릎꿇고 항복하라는 비굴한 메시지보다는 승리를 주겠다, 하나님이 도우시겠다는 말씀이 더 희망적이고 선호하는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냐선지자는 예레미야선지자를 모독하며 말합니다.

10,11. “10.선지자 하나냐가 선지자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고 11.모든 백성 앞에서 하나냐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년 안에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와 같이 꺾어 버리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의 길을 가니라....”

예레미야가 선포하고 있던 그 자리에서 그가 들고 있던 멍에를 부쉈고, 예레미야의 메시지는 완전히 잘못됐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예레미야는 모욕을 당했지만, 거기에 공개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하나냐의 예언이 거짓임을 알았지만, 예레미야는 대응하지 않았고, 그에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는 그들의 예언이 성취되는가의 여부로 판단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임합니다.

13.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들을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들을 만들었느니라..”

14. 쇠멍에가 모든 나라의 목에 채워질 것이다. 사람에 속하지 않은 들짐승까지도, 그를 섬기리라...

하나님은 계속해서, 바벨론을 모든 열방의 -회개의 회초리로 사용하시기로 계획하셨음을 선언하십니다. 그리고, 이 메시지에 거짓을 첨가하는 자들을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15-17. “15.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 16.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이라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 / 17.선지자 하나냐가 그 해 일곱째 달에 죽었더라...”

하나냐는 거짓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직접 그를 심판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반대의 대처]입니다.

말씀에 대한 반대, 진리에 대한 반대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저항, 불편함 등에 대한 대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처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직접돌파하는 것, 여론을 조성하는 것, 저항과 투쟁으로 싸움을 하는 것, 혹은 무시와 외면으로 대하는 등등 저보다 많은 분들이 더 잘 아실 겁니다.

그러면, 이 수많은 방법들 중에서, 어느 것이 맞는가는, 천편일률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도 아실 겁니다. 여기서, 저는 방법을 대신 결정해 드리는 것보다는, 신앙의 원칙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성경의 원칙은 무엇일까요?

 

매몰되지 않는 것, 잠식되지 않는 것 입니다.

 

상황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고, 그 상황으로 인해 생겨나는 분노에 잠식되지 않는 것입니다. 승리를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은 신자의 태도는 아닙니다. 분노를 마구 표출하고, 무례하고 과도한 액션을 취하는 것도 신자의 태도는 아닙니다. 대신,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신자의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반대에 대한 상실감, 좌절, 속에서 일어나는 분노, 복수심 등의 감정에 잠식되지 않는 것입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성경말씀을 기억하는 겁니다. 상황으로 인해, 사람 자체를 미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간혹, 평생에 철천지 원수가 생길 수 있긴하지만, 지금 여기선 그 묵은 원한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일상에서, 통상적인 신앙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작은 일에도 분노하고, 날카롭고, 예민하고, 감정적인 반응을 하는 것이 신자인 나의 스타일이 되지 않기를 소망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가끔, 남자분들은 운전을 하다가 분노를 멈추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자분들은 교묘한 감정소모를 하고 한없이 depress 될때가 있습니다. 이런 모든 부분들에 대해, 좀더 무뎌지면 어떨까요? 진짜 무뎌지라는 말이 아니라, 그 기분과 감정에 매몰되지 말자는 말입니다.

대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어떻게 반응하셨고, 해결해나가셨을까?를 고민해보는 것이지요. 물론, 예수님은 십자가수난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하신 경우가 많으시지만, 복음서 곳곳에서 예수님은 지혜롭게 상황을 해결해 나가셨습니다. 변론을 하시기도 하고, 분노하신 적도 있고, 사랑과 용서로 품어내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 자체가 그 분노나 좌절의 감정에 잠식되지는 않으셨던 듯 합니다. 쉬임없이 기쁘게 사역을 이어나가셨으니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역시 이 예수님을 본받으면 어떨까요? 분위기나 부정적 감정에 잠식되지 않으면서, 사역을 감당하기, 반대자들 앞에서도 당당해지기, 그리고 사랑과 정의의 일관된 태도를 가지려 최대한 노력하기. 그런 삶의 태도로 예수님 닮아가는 신실한 성도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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