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10분 묵상

확증편향(신념을 믿는 자들) / 욥기 11:1-20

스윙핸즈 2023. 11. 14.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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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증편향(신념을 믿는 자들)

2023.11.15

욥기 11:1-20 // 13.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14.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오늘 함께 묵상할 주제는 확증편향, 신념을 믿는자들입니다.

본문 욥기 11장은 욥의 세 번째 친구의 공격입니다.

1-4절입니다. “나아마 사람 소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말이 많으니 어찌 대답이 없으랴 말이 많은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네 자랑하는 말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

네 말에 의하면 내 도는 정결하고 나는 주께서 보시기에 깨끗하다 하는구나

 

나아마 사람 소발은~ 일주일간 욥의 곁에서 그를 지켰지만, 힘겹게 입을 뗀 욥과 두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소 격하게 반응합니다. 단어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너는 말이 많다. 말이 이렇게 많은데 과연 의롭겠나?

-네 자랑하는 말, 너의 비웃음을 나는 경멸한다.

-너는 정결하고, 깨끗하다고 스스로 말한다.

나는~ 이러이러한 너의 말을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다. 차라리 하나님께서 직접 너에게 말씀하셔서, 너를 아주그냥 콱~ 아무말 못하게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라고 5,6절에서 말합니다.

 

11,12.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의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

허망한 사람을 아신다.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다... 허망한 사람... 누구를 말하는걸까요? , 욥을 향해서 가감없이~ 너는 생각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너는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라고 충고합니다.

13-16상절. “13.만일 네가 마음을 바로 정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들 때에 14.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가 네 장막에 있지 못하게 하라 15.그리하면 네가 반드시 흠 없는 얼굴을 들게 되고 굳게 서서 두려움이 없으리니 16.곧 네 환난을 잊을 것이라

소발은 어떻게 이렇게 대놓고, 고통 중에 있는 욥에게 가감없이 말할 수 있었던 걸까요? 무엇인가 확신에 차 보입니다. 이정도는 해야 한다고 본인 스스로는 생각했던 듯 합니다. 아주 견고한 확신이 있던 거죠.

여기서 잠깐~ 세 친구의 공통된 입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애꿎은 자를 공격하시지 않는다.”입니다. 본인들의 이 논리~ 이 교리라고 해야 하나요? 이 신념에 대해, 한발도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눈 앞에 처절하게 죽어가고 있는 욥이라는 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본인의 신념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거죠.

 

5장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당시 환난과 고통이 인간에게 임할 때, 이는 하나님의 진노, 심판의 결과라고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믿음이라고도 부르셔도 되고, 신념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하나님은 실제,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하지만, 환난과 고통만 가지고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나쁘게만 사용하신다고 생각한다면, 좋으신 하나님, 내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져버립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매우 크고, 놀라운 분이심을 기억하셔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 신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 친구는, 욥을 향해, 정죄했고, 급기야 오늘 소발은 폭발했습니다. 소발은 욥을, 자랑질하는 자, 남들을 비웃는 자, 깨끗하다고 우기는자,(3) 허망한 거짓말하는 어리석은 자(12)라고 치부합니다. 왜냐하면, 욥은 자신의 신념에 맞는 케이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신념이 맞고, 내가 알고 있는 신념에서 벗어나는 지식은 없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입니다. (, 좀 생각해 보셔야 하는데요~ 그 신념 자체가 옳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1.상황에 대한 이해 2.사람(당사자)에 대한 이해 3.하나님에 대한 이해, 이 세가지에 대해 한가지라도 지식이 결여된다면, 사실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셔야 합니다. 어느 한가지만 맞다고, 모든 상황에 맞출 수 없다는 것이죠.

탈무드에 나온 이야기인데요, 두 학생이 랍비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 랍비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절대 안돼지,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엄숙한 대화인데, 그럴수 없다.” 다른 한 친구가, 랍비에게 다시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담배 피우는 중에는 기도를 하면 안되나요?” 랍비가 대답합니다. “형제님, 기도는 때와 장소가 필요 없습니다. 담배를 피는 중에라도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꺼예요.”

현대판 탈무드에 종종 인용되는 이야기인데요. 이것을 프레임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신자 역시, 내가 어떤 프레임(그걸 오늘은 신념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어떤 신념을 가졌으냐에 따라, 대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

하셔야 합니다.

 

내가(나 자신이)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 내가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신자인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태도는 무엇일까요?

,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입니다.

진정한 정답은, 오직 예수님께만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하셔야 합니다. 예수님보다 앞서서도 안되고, 너무 뒤쳐져서도 안됩니다. 그러니, 기준을 예수님께 두시지요.

내 신앙과 타인의 신앙에 대해서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신자로서 나의 시각이 아니라, 온세상의 주인이신 과부와 고아들의 아버지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기준임을 인정하시고, 그 기준에 순종하려고 노력하는 신실한 우리 꿈터공동체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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