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롭게 하소서.
2024.10.28.
예레미야애가 5:1-22 // 21.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오늘 함께 묵상할 주제는 “다시 새롭게 하소서”입니다.
본문 예레미야애가를 오늘로 마무리하는데요, 마지막 장인 5장 역시 계속되는 한탄으로 이어지면서, 분위기 반전이나 바뀌는 내용 없이 앞부분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5장은 앞부분과 다른 점을 찾는다면, 1-4장은 진짜 슬픔만 노래했다면, 5장은 슬픔을 고백함과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기도를 하고 있다고 보시면 조금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1절. “여호와여 우리가 당한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가 받은 치욕을 살펴보옵소서..”
우리는 치욕을 당했고, 소유를 빼앗겼고, 우리는 고아와 과부같고, 처절한 생활을 합니다.
5장을 시작하며, 하나님께 우리의 고통을 기억하시며, 이 고통의 발화점인 원수들을 신원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마치 시편의 탄식시와 그 결을 같이 합니다.
또한, 고백적인 부분도 있는데요, 6절입니다.
6절. “6.우리가 애굽 사람과 앗수르 사람과 악수하고 양식을 얻어 배불리고자 하였나이다
7.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원수의 훼방이 임한 이유도 알고 있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패역했고, 배반했고, 실제적으로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던 자신과 조상들의 죄악이 문제였음을 고백합니다.
15,16절. “15.우리의 마음에는 기쁨이 그쳤고 우리의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었사오며
16.우리의 머리에서는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 때문이니이다”
기쁨이 그쳤고, 슬픔이 가득했고, 실제로 이스라엘의 현실은 종살이, 노예살이로 전락한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21절.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다시 새롭게 하소서. 회복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사실, 내가 처한 상황, 지금 맞딱뜨린 현실에 안주하거나, 포기해 버릴때가 많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개인적으로 위기라고 생각하던, 어려움이라고 생각하던, 힘든 상황들을 맞딱뜨렸을 때, 불평불만을 하고, 회피하거나 나는 거기에 맞출 수 없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이 고쳐주면 좋겠고, 타인이 바뀌었으면 좋겠고, 상황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본인 스스로는 개선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간혹, 나도 바꾸고 싶다고 말할 때도 있지만, 가만 들어보면, 말만 그렇지 생각이나 행동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애가의 저자는 사실 정확하게 진단합니다.
첫째, 내가 주께로 돌아서고, 둘째, 주께서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그러니까, 주님이 나를 건져주시면, 내가 주님 믿을께요~처럼 주님과 먼제 딜을 하는게 아니라, “주님 내가 돌이키겠습니다. 그렇게하는 나의 정성을 보시고라도 나를 새롭게 회복시키소서.”라고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겠다고 합니다.
사실, 예레미야 애가의 메시지는 슬픔을 노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이 주제임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애가는, 아프다라는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가 슬픔을 노래하며 이 노래가 기도가 되고, 기도에 응답하실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하여 노래하는 것이 되는거죠.
만약, 애가가 슬픔만 한탄하다가 끝난다면, 그 결과는 넋두리 밖에 안될 것입니다. 후회와 회한, 누구를 원망하다 끝이 나겠죠. 하지만, 애가는 하나님을 자꾸 끌어들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야 하고,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나는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말을 자꾸 반복합니다. 소망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답답함과 한숨, 현실을 고통스러워하고, 지나간 나의 언행심사를 괴로워하는 것을 넘어서서~ 실제 하나님 앞에서 새사람이 되기로 결심하는 것이죠. 그동안 안해보았던 사랑도 베풀어보고, 이웃들에게 먼저 다가서기 도하고, 긍휼의 언어, 이해와 관용의 언어를 사용하고, 먼저 말하기보다는 다른이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기도 하고, 바꾸어보는 것입니다. 전후좌우 주변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도전하는 것이지요.
중요한건 꺽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인, 중꺽마가 예전에 유행이었는데요, 신자라면 조금 바꿔서 ‘중꺽도’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중요한건 꺽이지 않는 도전. 레디컬한 삶 말입니다.
오늘도 도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한주도 도전하셔야하구요, 또 일생을 도전하셔야 합니다. 내가 신자이기 때문이고, 또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닌,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삶이 매일의 도전임을 기억하며, 주께 소망을 두는 신실한 꿈터 성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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