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10분 묵상

실현되다 / 예레미야 39:1-18

스윙핸즈 2024. 7. 28. 23:24
반응형

 

실현되다

2024.07.29.

예레미야 39:1-18 // 17.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 18.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노략물 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더라...

 

오늘 함께 묵상할 주제는 실현되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데 결국 일어나는 일-숙명-왜 슬픈예감은 틀린적이 없나?)입니다.

 

본문 예레미야 39장은 이 예레미야서의 하이라이트, 이스라엘의 멸망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내내, 수천년 동안 예언되어오던, 하나님을 떠나면,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되는 비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39장에서 별표나, 찐한 글씨로 체크라도 해두었어야 하는게 아닐지.... )

특히, 지금 예레미야 39장은, 예루살렘함락 사건에 대해, 그리고 포로로 잡혀가지 않은 잔존하는 유다백성들의 상황에 대해 구약에서 가장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점입니다.

 

BC586814, 예루살렘성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됩니다.

1,2. “유다의 시드기야 왕의 제구년 열째 달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모든 군대가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치더니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넷째 달 아홉째 날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

바벨론의 마지막 공격은 시드기야왕의 910개월 째였습니다. 포위공격은 30개월이상 이어졌고, 이 공격과 멸망은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30개월의 포위공격으로 예루살렘성은 함락되었고, 바벨론의 고관들~ 그러니까, 전쟁의 장수들이 성으로 들어와 통치권을 행사하고, 포로로 잡은 사람들을 붙잡아 심문하기위해 중문에 앉았습니다. 중앙관청 같은 곳에, 자리했던 거죠. 여기서 시드기야왕은 예루살렘 성의 함락을 보며, 도망쳤습니다만, 바벨론 군대에 잡혔습니다.

하맛(시리아) 땅에 있던 느부갓네살 왕에게 끌려간 시드기야왕은 큰 수모를 겪습니다. 아들들이 눈 앞에서 살해 당하고, 유다의 모든 귀족들도 죽습니다. 그리고, 시드기야왕은 두 눈이 뽑혀 사슬로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 이 장면을 두고, 학자들은, 시드기야왕이 이전에 염려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수모를 당했다고 평가합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예레미야의 예언이 실현됩니다. 예루살렘의 왕궁과 백성의 집이 불탑니다. 병사들은 예루살렘 성벽을 헐어버립니다. 느부사라단은 성읍 안에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을 포로로 잡아갑니다. 예루살렘에는 빈민,가난한 사람들만 남겨둡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포도원과 밭을 주어, 살아가게 합니다. 그 빈한 땅은 그다랴라는 인물에게 담당하도록 합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성은 함락되었고, 이스라엘은 멸망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느부갓네살은 예레미야를 선대합니다. 감옥 뜰에서 석방되었고, 그다랴에게 인계됩니다.

여기서,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16-18. “너는 가서 구스인 에벳멜렉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이 성에 재난을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한 나의 말이 그 날에 네 눈 앞에 이루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반드시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가 노략물 같이 네 목숨을 얻을 것이니 이는 네가 나를 믿었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더라

에벳멜렉이 누군가요? , 맞습니다. 예레미야가 잡혀있을 때, 시드기야왕에게 부탁해서 예레미야를 왕궁으로 구출해낸 구스인이었습니다. 유대인도 아닌, 구스(에티오피아)인이 예레미야를 도왔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인듯합니다. 그의 행위는, 단순히 인정적인 차원이 아니라, D의 말씀을 믿은 것이고, D께서 너를 구원하실 것이고, [네가 나를 믿었으로 네 목숨을 얻을 것이라]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 아닌, 구스인만 이 험악한 패망의 상황에 구원을 얻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말씀의 실현]입니다.

말씀은 결국 실현되었습니다. 단지, 그 기한, 그 때가 언제인지 우리가 알 수 없었을 뿐이지, 말씀은 진실로 실현되었습니다. 사실,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했던 일이~ 실현된 것이라 기쁘다고 할 수 없지만, 결국은 이렇게 비참하게 끝나는건가? 하는 회의적인 마음이 듭니다.

우리에게는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내가 있는 동안에 사고만 터지지 않으면 돼~라는 아주 이기적인 생각인데요, 이런거죠. (내가 이 회사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만 사고가 나지 않으면 돼, 내가 이 부서에 담당하는 동안에만, 내 아이가 군대 있을 동안에만, 우리 아내가 그 일을 하는 동안에만~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돼~)하고 덮어버리고, 모른척하고, 관행을 눈감아 버립니다. 과연 괜찮은 걸까요? 조금 힘들더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요? 다음사람을 배려해서, 혹 다음세대를 배려해서~ 지금의 상황의 작은 문제를, 미리 해결해 두려는 수고를 왜 우리는 하지 않는걸까요?

언젠가부터 교회는 주일학교를 다음세대라는 단어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는 좋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다음세대가 있다는 사실은, 내가 그 앞세대라는 말이고, 앞사람이 다음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앞 사람이 밥을 퍼가면, 뒷사람이 밥이 부족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고, 맛있는 반찬을 뒷 사람에게 양보하기도 하고, 그런 측면에서의 앞세대와 다음세대가 필요한 것이죠.

 

하지만, 말만 다음세대인 경우는 사실 별로입니다. 내가 앞사람이니 너희는 나에게 맞추고, 내가 하는 방식이 맞고, 아직 문제가 생기지 않았으면 문제가 생길때까지 버텼다가 해결해도 되고.... 그런 식의 사고방식은, 다른사람에 대해 이미 배려가 없는 겁니다.

오늘 이스라엘의 문제는요~ 그 당대를 살아갔던 당사자들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의 세대들, 앞선 세대들에서 문제가 터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에게 문제가 없다는 말이 되진 않습니다. 결국, 세대는 다르지만, 공동책임입니다.

지나간 유행가 가사 중에, “왜 슬픈 예감은 틀린적이 없나?”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왜 슬픈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걸까요? 일어날 일이 일어나고 만다는 얘긴데, 그게 좋은 일이 아니라, 슬픈입니다. 안타까운 일이고, 위험한 일이고, 괴로운 일이라면, 쉽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나에게 일어난 일이, 우리 자녀에게, 우리 자손에게 그대로 반복된다면요?

상담학에서 이런 이론을 원가지이론이나, 원가족이라고 부릅니다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집안 내력~이라고 하는 되물림을 말합니다.

부탁드리기는 안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지금 내가 수고스럽더라도 바꾸어가는 겁니다. 내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 마시고, D의 힘, 예수그리스도 십자가의 능력을 힘입어 도전하시지요. 인간적인 마음과 시야로 바라보지 마시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어떤 인생을 살아가는 것일까? 나는 무엇이 문제인가? 점검하시고, 이 일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되물림하지 않기 위해, 힘을 내시지요.

주님 의지하며 신앙인으로 일취월장하는 한주, 그런 행복한 하루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10분묵상

#예레미야

#QT

#매일성경

#경건생활

홈 | 꿈터교회 (modoo.at)

꿈터교회.동탄 - YouTube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