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씸죄
2024.07.19.
예레미야 34:1-22 // 17.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고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대적하여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게 자유를 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너희를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어지게 할 것이며....// 22.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 성읍에 다시 오게 하리니 그들이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를 것이라 내가 유다의 성읍들을 주민이 없어 처참한 황무지가 되게 하리라...
본문 예레미야 34장부터는 다시 분위기가 바뀝니다. 30-33장까지 유다의 미래에 대한 소망을 이야기했다면, 34장부터는 현재의 심판으로 돌아옵니다.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남은 성읍들을 공격했을 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시드기야 왕에게 전하는데요. 라기스와 아세가라는 도시가 함락되는 상황입니다.
7절(현대인의 성경) “이때 바빌로니아 왕의 군대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남은 성, 곧 유다가 최후까지 지키고 있던 요새 성 라기스와 아세가를 공격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을 바벨론에 넘겨주기로 결정하셨습니다.
2,3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가서 유다의 시드기야 왕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이 성을 불사를 것이라
네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사로잡혀 그의 손에 넘겨져서 네 눈은 바벨론 왕의 눈을 볼 것이며 그의 입은 네 입을 마주 대하여 말할 것이요 너는 바벨론으로 가리라”
이스라엘의 멸망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미 앞에서도 말씀하셨지만, 또 다시 불순종을 언급하시는데요, 이번에는 그 중 노예삼는 죄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노예를 삼는 죄, 또 노비를 자유롭게 하는 계약 이런 단어가 8,9절에서 등장하는데요, 배경은 이렇습니다.
바벨론의 공격과 하나님의 저주에 대해, 시드기야 왕은 백성들과 언약을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려고 말이죠. 율법을 지키겠고, 동족을 노예삼았다면, 다시 풀어주고, 율법을 따라 동족 유대인을 종삼지 않겠다고 서약하고, 풀어줍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냐면,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하는 중, 애굽과 전쟁을 치러야할 일이 생겼고, 바벨론은 강대국이었던 애굽을 상대하느라 예루살렘의 공격을 중단했습니다. 그때, 노예를 풀어준 주인들의 마음이 바뀌었던 것이죠. 남유다는 애굽이 승리하여 바벨론의 위협이 끝나기를 바랬지만, 바벨론은 애굽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 사이 애굽이 승리할꺼라고 생각했던 유다는 풀어주었던 종들을 다시 잡아들여, 재건을 위한 공사를 했던 것이죠. 하지만, 바벨론은 돌아왔고, 예루살렘에 대한 공격을 다시 이어갔습니다.
이런 상황에 하나님은 시드기야와 이스라엘을 다시 멸망의 메시지를 주시는 것이죠.
“눈 가리고 아웅 한 것”이 들통나고 맙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괘씸죄]입니다.
상황을 모면하려 했던 시드기야와 이스라엘의 얄팍한 수는,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신실하게 지키지 않았습니다. 종들은 풀렸다, 다시 잡혔다를 반복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언약의 하나님은, 이 계약을 번복한 유다에 대해 괘씸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분노하셨고, 용서치 않겠다고 하십니다.
17절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한다.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않고 너희 동족에게 자유를 주지 않았으므로 이제 내가 너희에게 자유를 선언한다. 이 자유는 너희가 전쟁과 질병과 기근에서 죽는 자유이다. 내가 너희를 온 세계에 흩어 버릴 것이다.”
점점 단어가 격해지는 걸 보면, 하나님이 매우 분노하셨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단순히, 계약을 번복한 것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달래려 눈 앞에서 “율법을 지키는 척~”하고, 언약의 율법을 “기만”하고, 만주의 하나님을 “조롱”했다는 사실이 매우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눈 앞에 펼쳐진 위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경외,공경하지 않으면서, 율법을 지키는 척 합니다. 심지어는 현재는 사용하지않는 ‘서원’이라는 단어를 이용해, 하나님께 내 인생을 드리겠다던가, 누구를 바치겠다거나, 헌금을 내겠다거나, 다른 봉사를 하겠다던가... 여러 가지 과도한 약속을 합니다. 그나마 그 약속들을 지킨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그 약속을 쉽게 잊어버리거나 가벼이 번복해 버립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지금 예레미야 시대 때처럼 강직하게 우리를 대하셨다면, 오늘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이 몇 안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부탁드리기는, 진심이셨으면 좋겠습니다. 약속을 하던, 맹세를 하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대하시고, 그분께 대하여 진정성을 보여달라는 말입니다. 말과 행동이 같게 하자는 말입니다. 이 부분을 지켜내지 않거나, 소홀히 하신다면, 당신은 “괘씸죄”에 적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온 우주의 하나님은, 하찮은 우리와 같은 인간에게 경홀히 여김을 받으시거나, 만홀히 여김을 받으실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제발 다시 한번 부탁드리기는, 하나님이 우리 발 밑에 있다는 생각을 혹여라도 하셨다면, 경계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말씀의 실행입니다. 17절의 ‘자유를 선포한 것을 실행하지 않은 것’이 아주 작은 일처럼 보이고, 모두들 그렇게 행동하니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그건 종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기만행위였습니다. 말씀의 실행이 말입니다.
기독교는 말씀이 중심이 된다고 항상 주지시켜드리고 있습니다. 말씀이 중심이 된다는 말이 무엇일까요? 말씀이 실현된다는 말입니다. 신자를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주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말이죠. 그렇다면, 내 삶에 말씀이 실현되는 것이 일상이어야 하고, 이 말은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신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하루도, 한주를 마무리하며, 하나님나라가 내 삶에 이루어지는 기적을 작은 내 삶에서 경험하시는 신실한 꿈터성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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