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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일리치의 죽음 / 레프 톨스토이 / 민음사

스윙핸즈 2024. 12. 28.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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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 이반일리치의 죽음 / 레프 톨스토이 / 민음사
날짜 : 2024.12.28
책,작가 특징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김연경, 민음사 (1886년)
책내용 요약 :
 
*“모든 것이 한결같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죽음 같다. 산을 오른다고 상상하지만 사실은 꾸준히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산을 오르는 만큼 삶은 내 밑으로 떠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제대로 했는데 뭐가 어떻게 잘못되었단 말인가?’
*‘죽음이라니. 그렇다, 죽음. 저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가엾어하지도 않는다. 그저 즐길 따름이다. 저들도 아무려나 마찬가지야, 어차피 다들 죽을 테니까. 바보같이. 나는 좀 일찍, 저들은 좀 있다가 떠날 뿐이다. 저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죽음이 다른 어떤 일도 하지 못하도록 자꾸만 그를 끌어당기고 있다. 그저 죽음만을 바라보도록, 피하지 않고 똑바로 죽음을 응시하도록.
*‘죽음, 그래 죽음이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불쌍히 여기지도 않는구나. 그저 즐겁게 놀기나 하는구나. (문 저쪽에서 사람들의 노랫소리와 반주 소리가 흩어져 들려왔다) 다 마찬가지다, 저들도 모두 죽을 것이다. 바보들 같으니. 내가 먼저 가고 너희들은 좀 나중일지 몰라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저렇게 즐거울까, 짐승 같은 놈들!’
*더욱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죽음이란 놈이 다른 어떤 일도 하지 못하도록 자꾸만 그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저 죽음만을 바라보도록, 피하지 않고 똑바로 죽음을 응시하도록, 모든 일을 손에서 내려놓고 그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만 했다.
*거짓말, 죽기 직전까지도 멈추지 않을 이런 거짓말, 이 무섭고 장엄한 죽음의 의식을 인사차 들렀다든지, 커튼이 어떻다든지, 오찬 자리의 철갑상어 요리가 어떻다는 따위의 일상의 사소한 것들과 같은 수준으로 격하하는 이런 거짓말, 바로 이런 거짓말이 이반 일리치는 소름이 끼치도록 싫었다. 그는 사람들이 그런 거짓말을 늘어놓을 때마다 `이제 그만 거짓말은 집어치워. 내가 죽어간다는 건 당신들이나 나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 그러니까 제발 이제 최소한 거짓말을 하지 말란 말이야`라는 절규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이상하게도 그걸 내뱉지는 않았다.
*괴로웠다. 오랜 기간 병마에 시달리던 중 어떤 때에는, 사실대로 고백하기 좀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이반 일리치는 누군가 자신을 아픈 어린아이 대하듯이 그렇게 가엾게 여기며 보살펴주기를 가장 간절히 소원했다. 어린애를 어루만지고 달래듯이 다정하게 쓰다듬어주고 입을 맞추고 자기를 위해 울어주기를 그는 바랐다. .....(중략) 이반 일리치는 소리내어 울고 싶었고 그런 자신을 누군가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같이 울어주기를 바랐다.
*그래, 결국 이렇게 됐지. 죽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런데 왜? 왜 이렇게 된 것이지? 그럴 리가 없다. 삶이 이렇게 무의미하고 역겨운 것일 수는 없는 것이다. 삶이 그렇게 무의미하고 역겨운 것이라면 왜 이렇게 죽어야 하고 죽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해야 한단 말이냐? 아니다, 뭔가 그게 아니다.
`어쩌면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내 생각 :
100년전 인물인 톨스토이는 20대부터 80대까지의 긴 생애동안 90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1850년 후반에는 농민들의 열악한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교육에 있다고 판단했고, 학교, 교육에 관한 활동을 했다고 한다. 물론, 그에 따른 저술활동도 활발히 했고, [전쟁과 평화], [안나카레니나]등의 걸작을 만들어냈다. 철학적 관점에 근거해 당대 러시아 사회와 종교를 강렬하게 비판했고, 러시아정교에서는 파문, 반대로 민중에게는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이번에 읽은 [이반일리치의 죽음]은, 나름 열심히 자수성가한 삶을 살았던 이반일리치의 죽음이 전해지는 것으로 소설이 시작하는데, 일리치의 죽음의 현실은, 그 자리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그의 빈자리로 인해 얻게되는 유익을 계산하거나, 카드놀이를 하기 위해 빠르게 형식적으로 조문하고, 자신들의 즐길꺼리는 찾아오는 그런 주위 친구들, 지인들을 묘사하면서, 일리치라는 사람에게 진정 죽음을 슬퍼하는 친구가 있었는가? 그의 인생은 열심히 사는 것으로 의미를 두어야 하는가? 그의 삶과 죽음을 애도하는 한명의 진실한 친구, 심지어는 가족도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한 죽음 앞에서,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이반 일리치 역시 자신감있고, 냉소적이고, 기계적인 갑으로서의 삶의 자세에서~ (그는 검찰?판사로 승승장구하기도했다.) 죽음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의사에 대해 을의 입장에서의 인생이 되어버림을 묘사한다.
사실, 죽음 앞에서 판사든, 의사든, 어떤 대단한 사람이든~ 공평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톨스토이는 이반일리치의 죽음을 빗대며, 죽음 앞에서, 허세, 격식을 차리며, 무엇이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인지 삶에대해 진지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일침을 놓는 것은 아닐까?
2024년 12월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 타이밍에 읽은 이반일리치는, 한국사회 역시 비슷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치 인생이 제로썸게임이라고 생각하듯이, 오징어게임에서처럼, 상대가 죽으면 상금이 올라가니 같이 있는 사람들을 없애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결국 자신도 비참한 죽음을 면치 못하는 것처럼, 오늘 우리사회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동지의식이 전혀 없다니... 동지의식, 시민의식이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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