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10분 묵상

바람잘날 없는 인생 / 열왕기하 15:1-38

스윙핸즈 2024. 9. 3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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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잘날 없는 인생

2024.09.30.

열왕기하 15:1-38 // 8.유다의 왕 아사랴의 제삼십팔년에 여로보암의 아들 스가랴가 사마리아에서 여섯 달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9.그의 조상들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10.야베스의 아들 살룸이 그를 반역하여 백성 앞에서 쳐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오늘 함께 묵상할 주제는 바람잘날 없는 인생입니다.

본문, 열왕기하 15장의 구조는 약간 특이한데요, 앞부분과 뒷부분, 그러니까 1-7, 그리고 32-38절에서 남유다왕국의 왕이 누구인지 명시하는 동시에, 그 사이인 8-31절까지 긴 분량을, 북이스라엘의 왕들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설명합니다.

사실, 성경을 읽으면서, 이 왕들을 우리가 왜 다 알아야 하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들이 몇 년동안 통치하고, 망했는지를, 어떤 반역이 있었고, 그들은 어떤 잘잘못을 했는지 알아야 하는지 의문을 품으실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저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열왕기상하, 그리고 역대기와 사무엘서들을 성경에서는 역사서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이 부분의 성경 기록은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역사인 이 부분이 우리에게 잘 와닿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 부분은 너무너무너무너무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제 아이들이 야유회를 다녀오면서, 조선왕조 왕들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태정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인명선.... 사실, 제가 학교 다닐 때, 이부분을 제대로 못배워서, 조선왕조계보를 저는 잘 못외우는데, 못외우는 입장에서, 그게 왜 중요하지?라는 생각을 간간이 합니다. 하지만, 한국사람에게 우리의 역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역사가 중요한 이유가 뭘까요? 역사학자 토인비가 한 말을 기억하실 겁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실패한다.”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에, 역사를 공부해야 그 다음의 시대와 상황을 유추하기도하고, 준비할 수 있다는 말인데요. 그래서 역사가 중요한 것이죠.

사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역사서라고 불리우는 사사기부터, 열왕기, 역대기, 에스라, 느헤미야서 등을 읽는 이유는, 반복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 것이죠. 우리 역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잘했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하나님은 무엇을 좋아하시고, 무엇을 싫어하시는지, 역사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들이 교훈집의 성격이 강하다면, 이 역사서가 재미있기도하고, 어려운 이유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열왕기상 15장의 가운데 부분에 있는 북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서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대박입니다.

여기 약 25절 정도 되는 내용 안에, 북이스라엘 왕들이 6명이 바뀝니다. 특히 오늘 읽었던, 8절의 스가랴는 6개월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반역을 일으키고 왕이된 그 다음의 왕 살룸은, 1달동안 왕이었습니다. 살룸을 처치한 다음왕 므나헴은 10년을 다스리지만, 그의 아들 브가히야는 2년을 다스립니다. 그 다음은 장관이 반역하는데요, 베가라는 사람이 왕이 되어 20년을 다스립니다만, 그 역시 말년에 반역에 인생을 마무리하고, 호세아라는 자가 왕이 됩니다. , 여기까지만, 내용을 살펴보시면 될 듯 합니다.

왜냐하면, 방금 말씀드린, 호세아 왕을 끝으로 북이스라엘은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남유다, 북이스라엘로 이스라엘이 솔로몬 이후에 분단국가가 되었고, 북이스라엘이 악행을 많이 저질러서, 먼저 멸망했고, 남유다가 약 150년을 더 유지하다가 바벨론에 멸망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계실텐데요, 오늘 본문이 그 연대기가 등장합니다.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 북이스라엘 멸망.

특징적인 부분은,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하나같이, 악한 왕으로 묘사됩니다. 성경이 이들을 평가하는 문구도 똑같습니다. 9,18,24,28이 모두 같습니다.

24.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한지라

여호와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 그리고, 그를 따르는 민족. 결국, 멸망이었습니다.

반대로, 앞뒤에 등장하는 남유다의 왕들은, 약간 힘에 부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평가가 반복되는데요.

34,35.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35.오직 산당을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전히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아버지의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으나,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다... 못한건지, 안한건지 모르겠지만, 이 왕들이 거기까지 능력이나 믿음이 닿지 않은 것 같아보입니다. 그래서, 실수도 계속합니다만, 좀 안쓰럽습니다.

북이스라엘은 멸망, 남유다는 뭔가 부족합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바람 잘 날 없는 인생]입니다.

철학자들이 말하는, 존재론적 고통, 그러니까, 인간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 수반된다는 말에 저도 한표 동의합니다. 인생이 평탄할 일이 애초에 없고, 인간은 그 고통들에 대해서 대처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인거죠.

하지만, 문제는 여기 있습니다. 인생 자체가 수없는 고통의 반복이라고 한다해서, 우리의 신앙과 그에 따른 신앙적 삶이 무조건 고통을 수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고통스러운 것 맞는데, 나는 고통스럽지 않은 거죠. 왜요? 하나님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싫어합니다. 어떤 이유든, 고통스럽기 때문일테죠. 하지만, 저는 사람 만나는 것이 항상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슬픔과 고난을 당한 자, 또 환난 중에 기쁨을 만난 자들을 만나며, 마음을 함께 할 수 있음이 감사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타인의 평가 때문에, 자신의 언행과 신변정리에 대해 매우 예민하게 행동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런 부분에 대해, 내가 타인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영역과 그 사람의 영역을 분리하기도 합니다.

단순히, 고통이 많아서 신앙이 좋아진다거나, 고통 때문에 저 사람의 신앙과 인격이 매우 성숙할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럴 가능성이 많을 뿐이지, 무조건적인 결과를 얻어내는 법칙은 아닌거죠.

바람 잘 날 없는 인생의 풍파가 우리에게 항시 불어오고 있지만, 거친 풍랑 속에서, 깊은 바다와 같은 잠잠함을 누리는 신자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이건, 공동체건, 역사의 소용돌이건,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 되시기 때문인 것이죠.

9월의 마지막 날, , 펼쳐질 다시는 오지 않을 202410월을 기대하는 신실한 꿈터성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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